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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
- URL: https://tonggwa.life/girog/
- Published: 2026-10-04T21:36:26.000Z
- Updated: 2026-10-04T21:36:25.000Z
- Description: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쌓아 둔 기록을 다시 열어보며, 그 안에 있던 것은 결국 내 불안이었다는 사실을 마주한 에세이.
- Author: 올곧 이정
- Tags: 받아들임, 관계, 반복되는 관계

그때 어떤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마음에 들어왔고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워지려 하면 그 사람은 거리를 두었습니다. 연락이 뜸해지면 불쑥 나타나곤 했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러는지, 무엇 때문인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럴수록 그 사람은 벽을 더 세웠습니다.

나는 답답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찾아보니 조금 이해되는 것 같았습니다. 책도 찾아 읽었습니다.  
나는 정보를 모아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써온 필기 앱에 폴더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검색해서 찾은 글과 책에서 알게 된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어디서 멀어지고 어디서 다시 가까워지는지.  
패턴이 보였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비슷했습니다.  
가까워지다 멀어지는 방식이, 말투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타이밍이.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예전과 같은 자리였습니다.  
이번에는 더 빨리 알아냈습니다. 더 잘 대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번의 경험도 있었고 기록도 있었으니까요. 이번에는 AI도 있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물었습니다.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새로 알게 된 것들도 그 폴더에 차곡차곡 모아두었습니다.

그 사람도 그렇게 멀어졌습니다.

어느 날 글을 정리하다 그동안 모아둔 기록을 다시 열어봤습니다.  
정리해 둔 질문들. 적어둔 답변들. 새로 알게 됐다고 써둔 것들.  
하나씩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나는 같은 질문을 다른 말로 계속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답을 이미 알면서 또 묻고 있었습니다.

거기 있는 건 그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모은 건 내 불안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모니터를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폴더를 휴지통으로 옮겼습니다. 삭제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