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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만 더
- URL: https://tonggwa.life/jogeumman-deo/
- Published: 2026-09-06T23:00:08.000Z
- Updated: 2026-09-06T23:00:07.000Z
- Description: 조금만 더 버티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 말을 내가 듣고 싶은 말로 바꿔 적었습니다.
- Author: 올곧 이정
- Tags: 내려놓음, 자기이해, 알아차림

나는 몸의 말을 내가 듣고 싶은 말로 바꿔 적었다

소주 반병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새벽 세 시였습니다.

침대에 누워 챗GPT를 켰습니다. 회사의 상황과 앞으로의 방향을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질문을 바꿔가며 답변을 읽었습니다.

인공지능은 언제나 침착하고 논리적인 희망을 내놓았습니다.

화면을 끄고 누우면 가슴 한가운데가 무겁게 눌렸습니다.

며칠째 같은 시간에 눈이 떠졌고, 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주력으로 하던 비즈니스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통장 잔고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는데, 나는 다른 사업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시간과 돈을 계속 밀어 넣었습니다. 기존 일도, 새 일도 아무것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불쑥 차라리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상상을 할 때는 숨이 쉬어졌습니다.

몸은 몇 달 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다르게 읽었습니다.

부담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노력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해내는 사람들은 이 정도는 다 견뎌낸다고.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넘어갈 수 있다고.  
지난날처럼.

나는 내 몸의 신호를 ‘더 밀어붙여라’는 말로 바꿔 스스로에게 건넸습니다.

그리고 버텼습니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내가 모르는 곳에 기회가 있을 거야.  
제자리로 돌아갈 기회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렇게 버티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끌어들이게 됐습니다.

거래처에 부탁해 결제를 미뤘습니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소개해 달라, 일을 연결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더는 버틸 수 없을 때 금전적인 손을 벌린 곳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호의로 도와주었습니다.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고마움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내가 결정을 미루고 도망친 대가를 주변 사람들이 대신 치르게 하고 있었습니다.

내 부채를, 내 사업의 위험을 그들에게 조금씩 쪼개어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그걸 ‘도움’과 ‘고마움’이라는 말로 바꾸면 염치없는 마음이 조금 가려졌을 뿐입니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몸도 마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끌고 온 관성이 있었습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저것만 진행되면.

그런 기대가 연료가 되어 계속 등을 밀었습니다.

그 고집은 대단한 깨달음으로 꺾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돈을 융통할 곳이 없어지고, 자금 압박이 매일 아침 숨통을 쥐어짜 오자 어쩔 수 없이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야 했습니다. 더 태울 연료가 내 안에도 주변에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내려놓았습니다. 회사를 닫은 것은 아닙니다. 제도 안에서 하나씩 절차를 밟아가며 수습하고 있습니다.

막상 내려놓고 나니 생각보다 무너지는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었는데.

요즘 비슷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어두운 낯빛으로 휴대폰을 쥐고 "이것만 해결되면 된다", "지금 접으면 지금까지 한 게 다 쓰레기가 된다"고 말하는 이들을 봅니다.  
휴대폰에 켜진 주식 창의 파란 숫자를 멍하니 들여다보는 눈동자도 봅니다.

그들에게 아무런 충고도 건네지 못합니다. "나도 겪어봐서 안다"는 식의 말은 더더욱 나오지 않습니다.

가끔 후회합니다. 더 일찍 알아들었으면 어땠을까. 그때 내 믿음보다 몸의 신호를 한 번 더 들여다봤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은 오래 붙들지 않습니다. 그때로 돌아간다 한들 나는 그렇게밖에 못했을 겁니다.

요즘도 불쑥 가슴이 턱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몸이 보내는 신호인지, 아직 남은 일들을 마주하기 싫은 마음인지 나는 여전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다만 예전처럼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말로 바꿔 적지는 않습니다.

그저 하던 손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