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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일이네요
- URL: https://tonggwa.life/keunilineyo/
- Published: 2026-09-27T23:00:48.000Z
- Updated: 2026-09-27T23:00:47.000Z
- Description: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말투 앞에서, 몸은 여전히 목덜미의 열로 반응했습니다. 내 안에 남아 있던 것을 돌아봅니다.
- Author: 올곧 이정
- Tags: 몸의신호, 알아차림, 반복되는 관계

일 때문에 만나기로 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도로가 꽉 막혔습니다. 나중에 보니 앞쪽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었습니다.  
시간이 빠듯했습니다. 습관적으로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슬며시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도로가 막혀서 좀 늦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십 분쯤일 거라고 했습니다.

"아, 그래요? 조심히 오세요."

그러고는 낮게 숨을 내쉬며 이어서 말했습니다.

"아… 이러면 오늘 일정이 싹 뒤엉키는데, 큰일이네요.”

전화를 끊었습니다.  
가슴 한가운데서 뭔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열기가 목덜미까지 타고 올라왔습니다.

늦은 것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늦은 건 사고 때문이고, 전화로 미리 말했고, 십 분이었습니다. 화가 날 이유가 크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건 그 말투였습니다.  
늦지 말라고 말하고 끊었다면 나는 조금 미안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케줄이 꼬였다, 큰일 났다, 하면서 나를 탓하고 있었습니다. 돌려서.

그 화법을 압니다.

예전 상사 중에도 꼭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서운하다고도, 화가 났다고도 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알아서 죄스러운 마음을 갖게 만드는 말투. 자기 뜻대로 안 풀리는 상황을 남의 탓으로 슬쩍 넘겨버리는 말투.  
차라리 화를 내면 대응이라도 하겠는데 이렇게 말하는 데 대응하면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그 앞에서 오래 화를 누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말투가 그 사람의 방식일 뿐이라고 정리했습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화 한 통에 목덜미까지 열이 올랐습니다.

내려놓은 게 아니었습니다.

내려놓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됐을 뿐, 그 화법 앞에서 몸이 하는 일은 그대로였습니다. 말은 준비돼 있었는데 몸은 준비돼 있지 않았습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아이고 고생하셨어요.”

그다음 같은 화법이 이어졌습니다.

“빨리 움직여야겠어요. 오늘 스케줄 맞추려면 바쁘네요.”

시간은 10분 정도 늦어져 있었습니다.

또 목덜미가 한참 뜨거웠습니다.

집에 와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려놓았다는데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나는 과연 내려놓은 것이 맞을까?  
내려놓지 못했다면 무엇 때문일까?

그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