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어떤 사람들과는 금방 가까워졌고, 어떤 사람들 앞에서는 이유 없이 몸이 굳었습니다. 나는 그 차이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후배의 부탁으로 학생들 앞에 섰습니다.
AI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강의는 짧게 끝내고 대화 시간을 길게 가졌습니다. 학생들의 질문은 주로 미래를 위해, 취업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사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했습니다. 특히 철학책을 읽으라고 했습니다.
오전 강의가 끝나고 점심을 먹은 뒤 교수 몇 분과 전문가 한 분을 소개받았습니다. 친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명함을 건네고, 하는 일을 물었습니다. 함께 차를 한잔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단정한 태도에 내가 검열받는 듯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말이 짧아졌고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하고는 혼자 빠져나왔습니다.
소화도 시킬 겸 주변을 걸었습니다. 경치도 좋았고 혼자 걸으니, 마음도 편했습니다.
걷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내가 굳이 피할 이유가 있었을까.
돌아오니 또 다른 분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현장에서 사업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이쪽은 달랐습니다. 부딪히고 깨지는 날것의 일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금방 대화가 길어졌습니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리가 짧게 느껴졌습니다. 다음에는 소주라도 한잔하자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 사람들은 편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 앞에서는 몸이 굳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말이 짧아졌습니다. 나는 굳었지만, 굳은 줄도 몰랐습니다.
나는 그걸 극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몸이 굳으면 긴장을 풀 줄도 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나는 몸이 굳어지는 상황을 피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명함을 건네고, 하는 일을 묻고, 차를 마시자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들이 권위적이라고 생각했고,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서둘러 정리해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내 불편함은 그들의 탓이었습니다.
강의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그분들과 다시 마주쳤습니다.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그분들도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그날 오후에도 나는 학생들에게 책을 통해 다른 세상을 만나 보라고 했습니다.
정작 나는 낯선 세상의 사람들과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피한 줄도 몰랐습니다.
그날 알았습니다.
결국 차는 마시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