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끝난 자리에서
우리는 사건이 끝나면 통과도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통과는 사건이 지나간 뒤, 모두가 떠난 조용한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그날 아침, 나는 휴게소 밖으로 나와 눈물을 닦으며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전에도 수없이 보던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풍경 같았습니다.
삶이 나를 온전히 받아들인 것 같았습니다. 긴 여행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나는 이제 다 이르렀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진짜 어려운 시간은 그다음에 왔습니다.
눈을 감으면 오래 잊고 있던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등을 돌렸던 순간들, 못 본 척했던 표정들이 하나씩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 긴 밤 동안, 오래 외면해 온 내 그림자들을 하나씩 마주해야 했습니다.
깨어남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통과는, 그 후에 시작된 긴 작업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통과를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서류 박스를 들고 회사 문을 나서던 날. 이혼 서류를 들고 법원에서 만난 날. 상복을 입고 눈물 흘리던 그 하루. 그 일을 겪어내면 통과한 것이라 여깁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쌓아온 고민이 이제야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이런 사건은 통과의 입구일 뿐이었습니다.
많은 경험들이 그랬습니다. 결말이 났다고 생각했지만, 이후에도 많은 고민과 후회와 슬픔을 함께해야 했습니다.
이혼 그 자체보다, 그 후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긴 시간이 힘들었습니다.
사별 그 자체보다, 그 사람이 남긴 자리를 안고 살아가는 날들이 길었습니다.
수많은 감정을 마주하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억누르지 않고, 분석하지도 않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여정. 그 길은 생각보다 멀었습니다.
사건은 하루였습니다. 통과는 그 뒤의 수많은 날이었습니다.
사건은 끝났습니다. 다들 돌아가고, 위로도 잦아들고,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갑니다. 그 조용한 자리에 홀로 남겨졌을 때. 바로 그때가, 진짜 통과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건은 눈에 보입니다.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사건이 끝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시간은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외롭고, 더 깁니다.
제 지인들이 묻습니다.
그렇게 원하던 이혼을 했는데, 왜 이렇게 힘드냐고. 그토록 바라던 퇴사를 했는데, 왜 마음이 더 무거우냐고. 떠나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아프냐고.
그리고 마지막에 조용히 묻습니다.
"그 일을 어떻게 견뎠어요?"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자리를 벗어났던 날, 나는 빈 방바닥에 오래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원하던 것을 얻었는데도, 몸은 아직 그 방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통과는 그 사건이 지나가고, 모두가 떠난 조용한 방에서, 천천히 일어납니다.
이제 문을 넘어섰지만, 건너편 문을 열고 나가기까지 그 방에서 오래 살아가야 합니다.
건너편 문은 외면해서도, 견뎌서도, 해석해서도 열 수 없습니다. 그건 방 안을 혼자서 빙빙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사건이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사건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그것이, 통과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사건을 지나왔나요.
그리고 지금,
건너편 문을 향해 걷고 있나요.
아니면 아직 그 방 안에 머물러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