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곳
우리는 누구나 늘 열려 있는 문 하나를 품고 살아갑니다. 돈, 관계, 인정. 삶이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보였던 내 안의 열린 문. 문인 줄도 몰랐던 그 문에 대한 이야기.
“당근에서 팔지 그러셨어요?”
많이 들은 말입니다.
나는 내 것을 잘 내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주 쓰지 않는 노트북을 후배에게 줬습니다. 아직 쓸 만한 카메라를, 나는 잘 찍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 손에 건넸습니다. 입고 있던 옷도 "예쁘네요." 그 한마디면 벗어주곤 했습니다.
달라고 조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돈도 비슷했습니다. 부탁을 들으면 여유가 되는 한 도와주었습니다. 그 사이에 고민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모두 고맙다고 했습니다.
나는 스스로 후하고 호탕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눠줄 줄 아는 꽤 괜찮은 어른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다 내 삶이 기울고,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부탁할 차례였습니다. 내가 나눠준 사람에게, 돈을 빌려 간 사람에게.
돌아온 답들은 정중했지만 서늘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속이 뒤집혔습니다. 배신감과 함께, 나 자신이 더 원망스러웠습니다. 머릿속으로 내 손을 거쳐 간 물건과 돈을 하나하나 떠올렸습니다.
'내가 바보였구나.'
그 생각에서 쉽게 떠날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한 일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정작 나를 도운 건, 내가 내어준 적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내가 도와준 적 없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부탁하지 않았는데 도움을 자청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도무지 계산이 맞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턱을 괴고 그 계산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계산 안에서 내가 보였습니다.
나는 어떤 문을 늘 열어두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물건이, 돈이, 시간이 망설임 없이 그 문을 지나갔습니다.
나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 문을 열어둔 것이었습니다. 거절할 용기가 없어 문을 닫지 못하고서는, 들어와서 가져간 사람만 탓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얻어진 것이 쉽게 보이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살아보니 사람마다 그런 문이 하나씩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 앞에서, 어떤 사람은 감정 앞에서, 어떤 사람은 관계 앞에서. 다른 곳에서는 멀쩡한데, 그 문만은 이상하리만치 활짝 열려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정작 내 문은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늘 열려 있으니 문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문이 원래 열려 있던 문인지, 내가 살아오며 열어놓은 문인지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런 문이 있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나는 필요하다면 내어주는 편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하나입니다. 내어주기 전에, 잠깐 문 앞에 서봅니다. 가끔은 계산기를 두드려보는 치사함도 감수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문을 열어놓은 줄도 모르고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바람이 지나간 후에야 문이 열려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문이 있습니까.
늘 열려 있어서,
문인 줄도 몰랐던.
바람은 늘,
열린 문으로 드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