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것과 섞이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함께 흔들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섞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소파에 눕고 나서도 한참, 나는 친구의 이혼 소송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당사자는 친구인데, 앓는 사람은 나였습니다.
돌아보면 늘 그랬습니다. 누가 힘들다고 하면 내 일처럼 걱정했고, 누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하면 내 속이 먼저 끓어올랐습니다. 어떻게 됐는지 자꾸 확인하고, 확인하고 나서도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이야기하기 편하다고 했습니다. 잘 들어준다고, 마음을 알아준다고.
모임에 다녀오면 유독 지쳤습니다. 목소리 끝의 떨림. 웃음 뒤에 숨은 서운함. 괜찮다는 말 밑에 깔린 괜찮지 않음. 그런 것들이 너무 잘 보였습니다.
나는 너무 오래 남의 감정을 내 몫인 양 살아왔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통화 버튼 위에서 엄지손가락이 멈췄습니다. 받아야 하나. 그 순간 처음으로 이상한 걸 느꼈습니다. 지금 이 무게, 이거 누구 것이지.
친구의 슬픔인데 내가 앓고 있었습니다. 남의 감정이 내 삶 안으로 들어와 눌러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게 언제 들어왔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슬픔도, 분노도, 불안도, 초대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다만 언젠가부터 거기 있었을 뿐입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 감정을 앓고 있는 걸까.'
그 질문 하나가, 나와 그 감정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을 냈습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처음 보였습니다.
나는 그릇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누가 옆에서 울면 내 그릇에 그 물이 그대로 섞여 들어왔습니다. 섞이고 나면 어디까지가 내 물이고 어디부터가 남의 물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다정함인 줄 알았습니다. 나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누군가의 슬픔을 덜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 조금씩 가려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감정은 정말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습관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자꾸 물었습니다.
가끔은 전화를 받지 않은 날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내가 차가운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다음 날엔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엔 친구의 싸움을 대신 짊어지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저 끝까지 들어주었습니다. 내 그릇에 그 물을 붓지 않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알았습니다. 경계를 두는 일은 사람을 밀어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지지 않은 채로, 더 오래 그 사람 곁에 있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먼저 정을 주었고, 먼저 지쳤고, 먼저 떠났습니다. 이제는 지치지 않으니 남을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사람들과 더 오래 함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누군가 옆에서 울면,
내 그릇은 여전히 조금씩 흔들립니다.
예전처럼 흔들립니다.
다만 이제는 압니다.
흔들리는 것과
섞이는 것은 다르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