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와 세이렌
사랑은 건강한 나를 만나게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오래된 상처를 다시 깨우는 것일까요? 그리스 신화의 뮤즈와 세이렌을 통해 관계 속에서 반응하는 '나'를 돌아봅니다.
누군가에게 끌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사람은 나의 뮤즈일까, 세이렌일까.
두 이름 모두 그리스 신화에서 왔습니다. 뮤즈는 노래하고 춤추는 학예의 여신들입니다. 음악(Music)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세이렌은 흔히 바다의 인어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세이렌도 노래합니다. 하지만 그 노래는 아름다워서 더 위험합니다. 선원들은 그 노래를 따라 방향을 잃었고, 결국 깊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스스로 빠져들었습니다.
같은 노래인데, 그 끝은 정반대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이 둘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다르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내일 다시 만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부족한 모습이 보여도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더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경계를 그어도 불안하지 않았고, 천천히 가까워져도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만나지 못하면 아쉬웠지만, 나는 여전히 나로 남아 있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을 만나면 헤어진 뒤부터 진짜 관계가 시작됐습니다.
휴대폰을 붙잡고 말 한마디를 수십 번 곱씹었습니다.
답장이 늦어질 때마다 별일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십 가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내가 스스로 이상화로 메웠습니다.
불편한 사실은 애써 지나쳤습니다.
하기 싫은 일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피곤해도 시간을 냈습니다.
작은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출렁였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말투에도 '내가 뭘 잘못했지?'부터 떠올렸습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갑자기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마음 한쪽에서는 이미 지치고 있었지만, 잃는 것보다는 덜 아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내 하루는 조금씩 사라지고, 그 사람의 하루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뮤즈를 만났을 때는 숨이 편안했습니다.
함께 있어도 몸은 긴장을 풀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잘 먹고, 잘 자고,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세이렌을 만났을 때는 달랐습니다.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가슴은 답답했습니다.
연락이 오는 순간 심장이 먼저 뛰었고, 어깨에는 힘이 들어갔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그 긴장을 사랑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나중에야 이해했습니다. 뮤즈는 나를 나에게로 데려다줬습니다. 세이렌도 처음에는 같은 노래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그 노래를 따라간 끝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잃고 있었다는 것을.
그 차이는 그 사람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내 안에서 무엇이 반응하고 있었는가에 있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완벽한 뮤즈도, 완벽한 세이렌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 안에는 둘 다 있습니다. 어떤 이는 3:7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6:4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사람보다 먼저 나를 봅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인가.
아니면 그 사람 곁의 나인가.
지금 누군가의 목소리가 노래처럼 들리면,
나는 먼저 멈춥니다.
매료되기 전에.
그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반응하는 것은 나의 건강함인가.
아니면 나의 오래된 상처인가.
그래서 지금,
나를 매혹시키고 있는 이 노래는 누구의 노래일까.